교과 통합 수업에 대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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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 통합 수업에 대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

정사열 0 192 3 0
교과 통합 수업에 대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융복합’이 혁신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교육의 혁신을 추구한다는 많은 그룹과 교육당국은 이를 교육에 반영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뒤처지게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요, 교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교과통합 수업을 연구 시범하는 학교들도 무척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들이 과연 실재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랜 세월 구축된 교과 체계를 이렇게 쉽게 무너뜨려도 되는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우선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이 실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실질적인 생산력의 폭발적 증가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논객들의 막연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2017년까지 그토록 많던 4차 산업혁명 관련 강좌들이 올해 들어 급격히 줄었습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FANG(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 주가의 폭락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산업들은 태생적으로 취업 인력을 감소시키고 기업 이익만 천문학적으로 확대하여 자체 구매력을 떨어뜨리므로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고 빈부격차도 크게 넓히는 등 사회적 문제도 야기하고 있지요.

다음으로, 현재의 교과 체계를 단시간에 바꾸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교과 체계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 발전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오랜 시간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의 결과로 만들어진 학교 교육의 교과 체계를 명확한 근거 없이 허무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공통 기반 지식과 태도와 가치 등을 가르치지 않고, 미래 사회에서는 검색만 잘하면 된다거나 통합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근거가 희박하고 뜬구름 잡는 논의에 기초하여 교육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그리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자체 학습하는 AI는 매우 보수적이고 가짜 뉴스에 찌든 이야기를 하며, 많은 아이들이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고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타인을 혐오하는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섣부른 흐름들의 실패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최근 자유학기제에서는 기존 교과 시간을 떼어 내서 교과통합형 과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그 중복, 누락 등의 무체계성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주제를 잡아 자유롭게 수업하면서 신선감을 느끼지만 이내 그 낮고 정리되지 않은 교육과정의 수준과 완성도에 기인한 교육적 한계와 낮은 교육적 성과에 금방 치치고 마는 경우가 늘고 있지요.
교과의 통합, 재편과 같은 교육과정의 개편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뜬소문 수준의 근거에 기대지 말고 실재적인 근거들에 기반하지 않으면 학교 교육의 내실을 해치게 됩니다.

그동안 기계적으로 통합된 보여주기 식 교과 간 통합 수업의 문제는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두 교사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어야 할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많은 준비 시간과 논의가 요구되고,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기준, 어떤 관점에서 누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지 등의 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체로 이러한 통합수업이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또는 한정된 기간의 수업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교육적 손실이 1년 내내 계속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과 통합형 수업들은 여러 측면에서 교과지도의 부실화를 초래합니다. 교육청 차원은 물론 단위학교에서도 교과지도에 쓰일 예산들이 사라지고 행사성 교과통합수업 예산으로 변용되게 됩니다. 교과 수업 시간이 줄어들게 되므로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된 정선된 교육내용과 과업을 담은 교과서들은 많은 부분 교과교사의 지도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어 학생들은 필수적인 내용조차 교육받을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교과교사는 자신의 교과는 물론 통합교과수업에 대한 준비 시간도 별도로 필요하므로 결국 교과지도의 내실화는 크게 방해를 받게 되고 교과전문성도 그만큼 떨어지게 되며, 단위학교의 불안정한 교과체계로 예측가능한 안정적 수업 준비는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융합적, 통합교과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계적인 통합교과 수업을 통해서 배양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기본적인 필수 교과교육을 허무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초중등교육에서 학생들은 체계적인 교과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합적인 사고력을 배양하게 됩니다. 통합할 기반 지식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을까요?
통합교과교육은 개별교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개별 교과의 기초 지식을 충실히 학습하는 과정에서 타 교과와 접목하는 것은 통합교과적 활동이면서 동시에 유의미한 의미망을 형성하며 학습효과를 높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특히 영어과의 경우 모든 교과의 내용, 방법, 태도를 영어를 매개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영어 교과의 필수 학습 과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영어 학습 내용의 다양성을 확보해주며 영어 학습의 흥미와 동기를 제고하고 활동의 소재를 풍부히 하며, 이에 따라 영어 학습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이기도 합니다.
교사가 영어의 문법, 표현, 주제 등을 다른 다양한 교과와 관련된 내용으로 다변화한 활동들을 복수로 제시하고 학생들이 자신이 강점을 가진 관련 교과 내용을 선택하여 영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면 효과적인 통합교과적 다변화 수업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잘 아는 교과를 매개로 영어를 연습하게 되므로 더 높은 동기와 더 많은 배경 지식을 토대로 더 많은 내용을 말하거나 쓰고, 보다 쉽게 듣거나 읽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교과간 통합이나 통합교과 수업은 필요하지만 어떤 방식, 어떤 체계로 실현할지는 많은 주도면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과간 통합이나 교과 통폐합, 또는 새로운 교과의 신설은 교육과정 상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명시되지 않은 주먹구구식 교과통합수업은 실험적인 경우 외에는 함부로 하향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방식보다는 개별 교과의 내실화를 기하면서 그 한 축으로 개별 교과내에서 교과통합적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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