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그 비정상의 정상화

정사열의 영어 테크 라이프

수능, 그 비정상의 정상화

정사열 5 335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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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수능 감독에서 빠졌습니다.

작년에도 빠졌는데 올해는 연령대가 더 많이 내려가고 기간제 교사도 포함되었다 하니 은퇴할 때까지 수능 감독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시원섭섭하네요...

 

새벽에 감독할 학교로 가다가 길이 막혀 차를 길에 두고 뛰어가던 적도 있고, 한 시간도 빠짐없이 종일 감독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꼬박 서 있어야 하는데, 점심 먹은 후의 시험 감독은 또 어찌나 졸립던지요. 그렇다고 잠을 깨기 위해 몸을 심하게 흔들거나 앞뒤로 걸으면 항의 받을까봐 팔을 꼬집어가며 졸음을 쫓기도 했지요. 수능 감독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감독 마치고 수당을 받으면 다함께 곱창집으로 가서 술로 노곤함을 보상받으려더다 다음날 더 힘들었던 적도 있고요...

 

최근에 교사노조에서 수능감독용 의자 배치를 요구했다가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거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다른 공무원 시험 등에서도 감독관이 다 서 있는데 교사만 앉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게 논리적이고 합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능날은 비행기 운항도 듣기평가 시간을 피하도록 하는데요, 창문 닫고 시험보는데 멀리서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시험에 영향을 줄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감독관의 신발 소리는 물론, 숨쉬는 소리, 서 있는 위치까지 수험생들의 민원은 끊이지 않고요, 이것을 통제하는 것이 수능은 물론 학교의 정기고사에서도 주요 현안이 되고 있지요.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문제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본다는 것이 얼핏 매우 공정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조장된 착시현상일 뿐, 속을 잘 들여다 보면 수능과 같은 일제고사는 근본적으로 공정할 수 없습니다.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면서 대학의 공부 방식과 완전히 무관한 5지선다형 지필평가로 시험을 보는 것도 우습지요. 모든 인간은 저마다 다른 특성과 강점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제 진리처럼 퍼진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지식을 암기하고 잘 찍는 능력을 위주로 선발한다는 것도 더욱 우습지요. 대다수 정상적이고 저마다의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과정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런 찍기 방법을 집중 교육받을 기회를 가진 잘 사는 아이들에 비해 그렇지 못한 대다수 아이들이 손해볼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시험이 수능과 같은 일제고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평가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 요소들을 그대로 두고 지엽적이고 매우 미미하여 평가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교사 신발, 서 있는 위치, 비행기 운항 시간 따위에 온 힘을 기울이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점점 고착되고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이것이 대입 선발에서 더욱 더 결정적이 되어가는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교육 혁신을 한다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시작인데 그렇게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런 불공정하고 비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꿀을 빨자니 대중의 '공정'에 대한 요구와 깨달음이 높고 깊어가는 것이지요. 

 

저는 수능과 같은 일제고사에서 지엽적인 요소들에 이리도 목매는 것은, 동일 시험을 통한 한줄 세우기는 공정하다는 착시 현상을 대중적으로 확산하여 근본적인 공정에 대한 대중의 요구와 깨달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변죽인 것을 알지만 다함께 죽고살기로 매몰되다 보면 대중은 큰 그림을 잊고 눈 앞의 문제 해결에 발버둥치게 됩니다. 수능은 결코 근본적으로는 절대로 공정할 수 없음에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젊은이들의 오늘날 만연한 착각이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이 비정상이 점점 정상이 되어 갑니다. 수능의 대입 비중을 늘리면 젊은이들의 정부 지지도가 높아지는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 교육은 점점 후진적이 되어 가고요, 그 와중에 기득권은 더욱 꿀을 넘어 종래는 우리의 피를 빨게 될 겁니다.

 

 

5 Comments
piglets 11.08 00:06  
잘 읽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신학교차별 금지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사열 11.08 15:40  
당연한 것을 별도의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출신학교로 차별하는 것은 원래 최상위 법인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요?
piglets 11.08 16:10  
선진국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위해서 이와 비슷한 법이 많습니다. 미국의 'affermative action' 같은 것이지요.

"efforts to make education and employment available to people who have traditionally been treated unfairly, for example because of their race or sex, by giving them some advantages over people who have traditionally been more powerful"

법을 잘 아는 나경원 의원이 오늘 '헌법은 우리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있다'라고하면서 특목교 폐지 반대 주장을 펴네요. 우리아이들의 교육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출신학교차별 금지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까요? 이런 법의 문제점과 좋은 점이 무엇인지 교사모임안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한번 하고 싶네요. 지지하는 입장에서 특히 반대하는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사열 11.08 18:21  
판사 출신의 의원이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법조인 수준을 알고도 남죠. 법 취지를 반대하진 않습니다만 어떤 법을 만들어도 저런 사람들이 법을 적용하는 위치에 있는 한 의미 없습니다. 복잡한 법을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겁니다. 선행학습금지법 만들어 사교육은 전혀 잡지 못하고 교사만 죽을 맛이지요. 법이 복잡해질수록 서민은 법적으로 더 차별을 받게 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대중적으로 깨어 저항할 의식을 가진 집단을 형성할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요...  여러가지로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piglets 11.09 19:15  
네 그렇습니다. 전에 '취업이력서에 출신대학란을 없애자'라는 칼럼을 써서  공무원채용시  '블라인드면접'을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는데요. 이것을 사기업으로 확장하는 법이  '출신학교차별 금지법' 입니다. 이번에도 노력중인데 이런 법이 생기면 어떤 문제가 있을 지 조사 중입니다. 찬성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한겨레신문

‘학력·학벌 차별 금지법’ 대표발의 2년 이하 징역·1천만원 이하 벌금 규정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달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마치고 국회로 복귀한 김부겸 의원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학력·학벌로 인한 차별’을 막기 위한 입법을 추진한다.

김부겸 의원(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은 고용과 국가 자격 부여 등에서 학력·학벌(출신학교)로 인한 부당한 차별을 실질적으로 금지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학력·학벌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학력·학벌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10일 밝혔다.

‘학력·학벌 차별금지법’을 살펴보면, 사용자는 모집·채용, 임금 지급, 교육·훈련, 승진 등에 있어 학력·학벌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할 수 없으며, 합리적인 기준 이상의 학력·학벌을 요구할 수도 없다.

또한 학력·학벌로 인한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진정할 수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구제조치 등을 권고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불이익 조치를 한 것이 밝혀지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법률안을 만들었다.

김부겸 의원은 “현재 우리 사회는 학력·학벌이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기능하는 기형적인 사회”라며 “이러한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은 개인의 특성을 도외시하여 인적자원의 합리적·효율적 배분·활용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학력·학벌 취득을 위한 사회구성원의 경쟁을 지나치게 가열시켜 사회구성원의 심리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의에는 강병원, 권칠승, 김동철, 노웅래, 문희상, 유동수, 유은혜, 이철희, 인재근, 정재호, 표창원 의원 등이 공동발의자로 함께 했다.

아울러 김부겸 의원은 비슷한 취지의 ‘고용정책 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 ‘국가공무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 ‘지방공무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 3건의 법안도 대표 발의했다. 양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