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라면, 우리 아이라면...

정사열의 영어 테크 라이프

내 집이라면, 우리 아이라면...

정사열 2 352 5 0
2년 동안 학생회, 방송, 동아리, 봉사활동, 가산점, 축제 등의 온갖 업무를 했던 창체기획을 떠나 올해는 나홀로 부서인 과학정보부의 부장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영어교사로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일 정도로 업무가 차고 넘칩니다.  그 와중에 퇴임하시는 작년 과학정보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업무 인계를 받는데 반복적으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컴퓨터 유지 보수업체에서 물품 비용 청구하면 비싸다고 까탈스럽게 하지 말고 그냥 넉넉하게 비용 써라. 그런데서 조금씩 붙여 가져가야 유지보수업체도 먹고 살고 서비스도 좋아진다."

 

왜 이렇게 여러 차례 말씀하시나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작년에 방송 담당자로 방송 유지보수 업체를 거의 부르지 않았거든요. 케이블 불량일 때 수리해 달라고 하면 단순 교체인데도 출장비 15만원과 부품값도 터무니 없이 비싸게 청구해서 그냥 오픈마켓에서 좋은 부품으로 검색하여 싸게 사서 직접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제 자리 컴퓨터가 너무 느려 하드디스크를 SSD로 교체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직접 5만원에 최상품 SSD를 주문하여 교체했습니다. 다른 노트북들은 유지보수 업체에 맡겨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학교 재정을 아끼고 좋은 부품을 써서 더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행정실장과 과학정보부장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유지보수 업체에는 매월 책정된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됩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부품을 구입하여 교체해 달라고 해도 원칙적으로 별 문제는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부품값을 높게 매겨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관행이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AS를 위한답시고 컴퓨터나 TV 등의 기기를 값비싼 대기업 제품을 사는 것까지 생각하면 IT 관련 교육재정의 낭비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실제로 이런 기기에 대한 AS를 대기업에서 직접 신청하여 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교육정보부장을 할 때는 더욱 가관이었지요. 방송실 리모델링 비용으로 5천만원인가 내려왔는데, 교실 한칸이나 한칸 반 크기의 방송실 만들 비용을 겨우 교실 반칸에 다 썼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벽걸이 에어콘은 배수관 연결도 안된 날림공사로 세수대야 같은 걸 받쳐 물을 받고 있었고요, 운동장 쪽 창문을 모두 막아버려서 운동장 행사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행사 방송을 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같은 비용으로 다른 학교들은 교실 한칸이나 한칸 반에 넓게 방송실을 꾸민 것을 아는데, 다 빈 깡통인 기계들로 채워졌는지 방송 사고는 여전하고, 교실 방송 선이 연결이 끊긴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리모델링을 거금을 들여 새로 했는데 이전보다 더 방송에 문제가 많은 것이 황당하던 차에 방송 수리 문제로 그때 그 업체 사장과 통화 중 들었던 충격적인 발언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대체 AS 받을 태도가 안되어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런 업체들이 여전히 각 학교의 방송 시설 공사를 대부분 수주하고 있지요.

 

최근 몇년간 서울에서는 화장실 현대화 사업으로 엄청난 재정을 쓰고 있습니다. 화장실 한 실 리모델링에 5천만원에서 6천만원 이상까지 지출하지요. 욕실 2칸과 방 4칸, 거실, 외부 샷시, 베란다 등이 모두 포함된 아파트 40평형을 화려하게 리모델링하는데도 5천만원이면 되는데, 이건 좀 심하다 싶지요. 그러나 이미 많은 학교에서 지출되었고 또 현재진행중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공사인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학생이 실수로 화장실 복도 벽을 찼더니 벽 속으로 발이 푹 들어간 일만 보더라도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장실을 설기설기 겉치장하는데 한 학교 당 5억, 10억씩 마구 지출되고 있지요. 내 집이라면, 내 돈이라면 이렇게 낭비할 수 있을까요?(최근에는 교실 한 칸에 5천만원씩 들여 호화스러워 보이는 교실 현대화 사업을 진행중인 초등학교들이 꽤 있습니다. 이 역시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며 세금 낭비가 너무나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어떤 활동, 어떤 사업이건 누군가는 많은 의미를 두고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여 추진하는 사업일 겁니다. 그렇지만 세금이고 학교 재정이니 내 돈처럼 아껴 쓰지는 않습니다. 이리저리 가공된 의미로 치장된 가성비 떨어지는 사업들이 시행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몇년 후에는 그 자리를 깨부수고 새로운 겉치장을 하는데 또 세금을 쏟아 붓지요. 튼튼하고 깔끔한 관리가 가능한 형태로 유연한 적용이 가능한 시설과 하드웨어들은 보기 힘들고 불과 몇년도 안되어 유행처럼 덧씌워졌다가 부셔져 쓰레기를 양산합니다. 수업에 꼭 필요한 복사 용지나 학습자료에 대한 자잘한 구입 비용은 매몰차게 제한하면서 이런 대형 공사비는 또 너무 쉽게 낭비합니다. 그러면서 새책상이 여기저기 파이고 새 페인트칠한 교실벽에 낙서가 보이기라도 하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책상, 자기 방 아니라고 저런다고요.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은 망실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사회의 기틀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도덕과 책임 의식들은 쌈싸먹은지 오래고 개별화와 무관심을 넘어 못빼먹어 안달인 지경에 이르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내 돈, 내 집, 내 방, 내 아이인 것 처럼 학교 재정, 학교 시설, 교실 설비, 학생 지도를 한다는 개념의 사회적 복원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2 Comments
강승연 03.20 20:54  
아~ 정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김현수 03.21 11:13  
저두요 작년에 공간연수갔다가 영어전용실 잘 안쓴다고 멀쩡한 인테리어 부수고 다른 공간 만든다는 어느중학교쌤 얘기듣고 참 심란했습니다 공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그해에 트렌드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처음 계획에 참여한 교사가 이동하면 그 공간이 또 불용공간이 되고. 여러 고민을 하며 시설개선이 진행되면 좋을텐데 이 부분 역시 전문지식이 없는 그해 담당교사 개인 역량에 의존되는 현실이라 문제점을 안고 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영어전용실 도서관 리모델링 스터디카페 연극연습실 등 우연히 여러 공간개선업무에 노출되면서 범용성 실용성 경제성  등 여러 고민을 하며 스트레스받은 경험이 있기에 이렇게 장황한 댓글을 달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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