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위한 개학, 사라지는 혁신의 기회

정사열의 영어 테크 라이프

입시를 위한 개학, 사라지는 혁신의 기회

정사열 0 306 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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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의 20일 개학이 기어이 확정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고1,2와 중학교 개학도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혼합 수업의 적용 방식을 학교 자율에 맡긴다고는 하지만, 공교육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전략 없이 책임을 단위학교로 전가한 처사로 상당히 씁쓸하다.


보다 큰 문제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개학이 아니라 수능 일정과 준비를 위한 개학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수십년간 국가의 교육과정을 담은 교과서를 내팽개치고 입시 위주의 주입식 문제풀이 교육을 해왔다. 대학의 선발 시험을 공교육기관에서 준비시키기 위해 올인하는 교육 비정상의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민주시민으로서 갖출 소양과 기반 지식과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오로지 문제풀이 수업에 매진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동기, 흥미, 자기주도학습 능력 등은 땅에 떨어졌다. 그 결과 국격에 맞지 않게 대학의 경쟁력은 OECD 국가 중에서 항상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노벨상은 커녕 그 싹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런 절름발이 교육에 대한 혁신의 요구는 광범위했으나 정부에서 묵인하고 사교육기관에서 논리와 공포를 공급하며 가장 손해를 보는 대다수 학생 학부모들의 현실에 대한 직시를 흐린 결과 더욱 입시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강화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렇게 전 세계에 유래 없는 입시 위주 교육이 공고화하였고, 급기야 코로나19 비상 시기에 국민의 목숨을 건 도박과 같이 입시를 위한 개학이 서슴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차분히 주변을 돌아보자. 코로나19 때문에 입시보다 더 중요한 생계 수단을 접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올림픽이 연기되고 언제 개최될지 모르는 지경이고, 무덤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주검이 넘쳐나고, 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하는 나라들도 있다. 잠깐 방심하면 다시 번창하는 것이 코로나19이고 우리는 이미 몇 차례 그것을 체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학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수능 입시가 뒤집은 것이다. 모든 것이 입시로 통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이보다 더 여실히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이게 정말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있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학교 외에는 수능 준비를 할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서 개학은 피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가져다 붙인다. 그런데 잘 들여다 보면 그런 논리를 공급하는 자들이 대개는 사교육으로 돈을 버는 무리들이다. 사교육 기관은 물론 오늘날 입시 장사에 뛰어든 언론사, EBS 등도 참 많은 수를 거든다. 유래 없는 감염병이 돌고 온 국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에도 자신들의 돈줄인 입시제도를 혁파할 생각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강요하는 입시 지상주의의 논리와 공포 마케팅에 대중은 세뇌되어 스스로 승률 제로인 입시에 매몰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월드컵이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승부의 불확실성이 일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100프로 기술로 승부가 결정된다면 우승 확률 100프로인 최상위 축구 실력을 가진 나라 외에는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니 월드컵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 실력이 낮아도 새롭고 창의적인 전략으로 월등한 상대를 이기거나, 승부와 상관 없이 멋진 골을 낼 기회는 약소국의 선수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입시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실력만 100프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지금도 매진하고 있다. 흔히 불공정 논리로 이를 합리화하는데, 사실은 쪽집게 사교육과 선천적 학습 환경을 마음껏 자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진 자들의 물샐 틈 없는 방어 공작일 뿐이다. 특히나 평가의 주 요소가 암기를 위주로 한 문제풀이라는 극히 단편적인 것이니, 이 협애한 한 가지 잣대로 저마다 다른 능력과 경험과 배경을 가진 수많은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 혹시나 개천에서 용 날까봐 뛰지 못하도록 그물을 치려는 형국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승부도 뻔하고 재미도 없는 이 절름발이 교육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입시가 목숨보다 가치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가 문을 닫아도 교육은 계속되며, 학습의 지평은 끝없이 넓다는 것도 체험하게 되었다. 평소 듣도보도 못한 수많은 도구와 기능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숨겨진 능력을 발굴하고 협애한 시야를 한껏 넓히게 되었다. 이미 대학 진학률은 떨어지고 있었고 대학 나오나 안 나오나 하는 일은 최저 임금에 못미치는 아르바이트 뿐이라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 세상이다. 새로운 교육을 체험하고 평생학습을 위한 자기주도학습 기회를 가져본 많은 학생들은 대학 이외의 새로운 진로와 전망을 모색할 것이며, 그만큼 탈 입시, 대학 미진학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한 번 균열이 나고 하향 곡선을 타기 시작하면 정당성 없고 전망도 없는 입시 교육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어떤 정권, 어떤 시기에도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며 존재 기반을 강화해온 수능 중심의 입시 교육을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정권과 역사상 유래 없이 대다수를 점하는 진보교육감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교육 당국의 콜라보가 순전히 수능 때문에 이루어지는 섣부른 개학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수준의 한줄세우기 일제고사의 무산 가능성은 타율적이지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교육 혁신의 기회이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입시 교육의 주범인 수능을 살리기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기대어 과감하게 올해는 수능 없이 대입 전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대입을 위한 한줄세우기 시험을 관장하고 대입 업무를 고등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수행하면서 자행되는 온갖 공교육 파행의 고리를 끊고,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와 수능 없는 대학입시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물론 재수생의 문제나 그간 준비해온 고3이나 대학들의 아우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에 준하는 심각한 비상시기이며, 이에 따라 비상한 대책을 강구해야할 시기이다. 갑자기 이루어진 온라인수업의 전면화가 큰 문제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수능 없는 대입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교육 주체와 당국의 위기 대처를 위한 방안을 모아 책임감 있게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재난 대응 과정에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수능의 실질적인 대안도 반드시 출현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코로나19처럼 우리의 수능과 대학입시제도 또한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코로나는 갑작스럽게 와서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으나 입시교육은 반 세기 동안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을 점점 더 피폐하게 했으며 이제는 코로나19에 버금가는 재앙처럼 자리잡아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 되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학교는 교육과정에 충실한 전인교육을 하며 미래 핵심역량을 키우고 평생 학습의 기틀을 다지는 곳으로 제발 제대로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학은 각 학과의 비전과 요구와 맞는 맞춤형 인재를 스스로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럴 능력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한줄세우기 시험에 재원을 낭비하지 말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인적 물적 지원과 공교육을 파행으로 이끄는 무분별한 사교육이나 쓸데없는 경쟁 유발을 강력히 규제하는 업무에 충실하기를 소망한다. 이런 희망과 기대들 앞에 교육당국의 이번 조치가 장애물로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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